감독 김태용
주연 현빈, 탕웨이
이 영화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개봉날 바로 가서 보았다. 이 영화의 내용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내용만 보면 한번만 봐도 뻔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했던 것은, 시애틀의 하늘처럼 뿌옇고 먹먹하게 다가온 이 영화를 혹시나 다시 보면 제대로 알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자. 이 영화가 이렇게 상업적으로 크게 개봉될 영화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크릿 가든'에 나온 현빈이 크게 흥하면서 이 영화까지 덩달아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이 영화의 메이저 개봉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지만, 드라마 속 현빈에 끌려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이 영화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폄하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모든 예술작품이 응당 그러하듯 다양한 관객의 시각은 모두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자기가 기대했던 어떠한 것과 다르다고 폄하하는 일부 관객이다.)
평소엔 스토리를 쓰지 않지만 이번엔 간략히.(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인것 같은 느낌.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공허한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애나'의 상황이다.오랜만에 본 가족들은 그녀를 반기지만 그것 뿐이다. 다들 바쁜 핑계와 함께 그녀 곁에서 사라진다. 가족들이 그녀에게 말을 붙일 이유라곤 그저 어머니의 유산밖에 없다. 예전에 사랑했던 그와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건만, 그는 세월을 탓하며 애초에 그녀를 멀찌감치 떼어 놓는다. 그들과 한 공간에 위치하지만 그녀는 그저 주변인일 뿐이다.
혼자 산책하며, 옷도 입어보면서 그 외로움을 떨치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 걸려온 전화는 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녀는 체념하고 교도소로 돌아가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운 외로움을 가지고 교도소로 가는 것도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도 버스 매표소에서 수없이 돌아섰으리라.
그 순간에 다가온 것이 '훈'이다. 훈은 애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않는다. 극중에 얘기가 나오지만 "그저 함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시간을 함께 해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하오, 하오"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낀 애나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외로움은 그 무엇도 채울 수 없다. 잠시 잊게 해줄 뿐.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이다.
애나는 그렇게 일어났을 것이다. 어머니의 레스토랑에서 "왜 남의 포크를 사용했어요? 왜? 왜!" 하는 그 부분에서 그녀는 과거의 외로움과는 작별을 고한다. 자신이 혼자 일어섰음을 알리는 눈물겨운 선언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쟤 왜저래? 하면서 벙찐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자신을 되찾는다.
'만추'를 함께 한 훈과 애나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리고 가슴 먹먹한 마지막 엔딩장면이다. 카페에서 애나가 훈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처음 영화를 볼 때는 훈이가 언제 오려나하며 함께 가슴 졸이면서 보았다. 하지만, 두번째 볼 때는 훈을 기다리고 있는 '애나'의 감정을 보게 되었다. 덤덤한 듯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놀라며 그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 인사를 연습하는 애나를 보면서 '아,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을에 살고 있지 않구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혼자 산책하며, 옷도 입어보면서 그 외로움을 떨치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 걸려온 전화는 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녀는 체념하고 교도소로 돌아가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운 외로움을 가지고 교도소로 가는 것도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도 버스 매표소에서 수없이 돌아섰으리라.
그 순간에 다가온 것이 '훈'이다. 훈은 애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않는다. 극중에 얘기가 나오지만 "그저 함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시간을 함께 해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하오, 하오"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낀 애나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외로움은 그 무엇도 채울 수 없다. 잠시 잊게 해줄 뿐.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이다.
애나는 그렇게 일어났을 것이다. 어머니의 레스토랑에서 "왜 남의 포크를 사용했어요? 왜? 왜!" 하는 그 부분에서 그녀는 과거의 외로움과는 작별을 고한다. 자신이 혼자 일어섰음을 알리는 눈물겨운 선언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쟤 왜저래? 하면서 벙찐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자신을 되찾는다.
'만추'를 함께 한 훈과 애나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리고 가슴 먹먹한 마지막 엔딩장면이다. 카페에서 애나가 훈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처음 영화를 볼 때는 훈이가 언제 오려나하며 함께 가슴 졸이면서 보았다. 하지만, 두번째 볼 때는 훈을 기다리고 있는 '애나'의 감정을 보게 되었다. 덤덤한 듯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놀라며 그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 인사를 연습하는 애나를 보면서 '아,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을에 살고 있지 않구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영화는 좋게 말하면 잔잔하고, 대중적인 표현을 가져오면 지루하다. 흔히 말하는 상업영화의 '친절함'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지루하고 밋밋한 영화일 것이다. 배우의 감정이 또렷히 보여지고, 폭발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관객이 어떻게 느껴야한다는 것까지 친절하게 가이드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 영화가 잔잔하고 지루하다면, 원래 외로움은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외로움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다른 영화들 처럼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는지, 아니면 만추처럼 잔잔하지만 가슴 먹먹하게 스며든 감정이었는지를.
ps. 탕웨이의 감정처리나 연기는 괜찮았지만, 현빈은 약간 걷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익숙하지 못한 영어로 감정을 처리해야한 다는 점에서도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산지 얼마 안되고, 다소 들이대는 성격(?)을 가진 그의 캐릭터를 고려해보면 그의 연기는 정말로 완벽한 '못하는 척'연기였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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