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어제의 폐막식을 끝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오늘 티비를 보니, 외형적인 규모는 사상최대인데, 객석점유율이 꽤 줄었다고 한다.
경기도 안좋고, 신종플루의 영향도 조금은 있겠지만, 아직 이 신생 영화제에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
정신없었던 한주가 끝나고 잠도 푹 잤기에, 12일부터 15일까지의 매일매일의 기록을 정리해서 써봄.
(스포일러가 자연스럽게 섞여있으니 죄송.)
12일
16:00 끝과 시작
꽤나 무시무시한듯 하면서도 슬픈 영화였는데, 슬픈 영화를 많이 봐왔지만, 참 재밌는 타이밍에 눈물이 맺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갈때 눈물이 핑 돌더라?
그 이유가, 이 영화의 진행방식 때문인 것 같은데,
재인(황정민 분)이 작가라는 설정하에 작가의 입을 빌어서 정하(엄정화 분)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재인의 삶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실제로 그 일이 시작된다. (말이 이상한가? 영화를 직접보자.)
계속해서 끊어져서 진행되는 시간 분절 하나하나들이 혼란스러웠지만, 결국은 제목에서 유추해낸대로 끝의 시작에 연결되어서 다시 시작되었다. 예상은 했다고 하지만, 커다란 플롯이 내가 예상했다고 그게 영화의 맛을 떨어트리거나 하는건 아닌 법이다. 그 정도의 큰 흐름은 영화의 안내서만 봐도 유추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관객들이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는 흐름에 다양한 변화를 주어, 논리적 비약을 피하면서도 관객을 상상을 뒤집어 엎는가가 중요한게 아닐까?
재인의 '끝' 이후의 이야기는 재인의 입을 통해서 시작되지만 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현재의 시간과 함께 진행되며, 그 이야기는 그가 죽고 난 뒤의 정하가 읽는 그의 스토리노트로 끝난다. 그리고 그 '현재'가 끝나는 순간 소설이 시작된다. '딩동'소리가 나는 순간의 소름을 잊을 수가 없다. 무슨일이 일어날지 다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찾아왔다는 사실에서 찾아오는 그 소름. 정하의 집을 방문한 미루(?, 김효진 분)을 본 순간의 정하의 그 입술.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20:00 더 도어
유쾌하고 즐거운 GV가 있었다. GV에서 오간 질답 중 몇 개를 추려본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설마 나비영화처럼 하나가 바뀌니 뒤가 이렇게 바뀌더라 이런 유치한 내용은 아니겠지하는 의심을하면서 보았다. 아주 예전부터 수 많은 상업영화에서도 시간 여행이라던가 이런 것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미래의 다비트가 과거의 다비트를 죽이는 순간 '음, 감독은 과연 어떤 물리학적 이론을 갖고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GV에서 오간 질답을 통해서 해결되었다.
처음에는 범죄스릴러처럼 얘기가 흘러간다. 미래의 다비트가 과거의 다비트를 죽이고, 딸을 속이고, 그 비밀을 알아낸 막스를 옆집 뚱보 아저씨와 죽이고,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볼때마다 진행이 어찌될까 싶어 내가 괜히 좌불안석이다. 나중에 옆집 뚱보 아저씨-_-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되지만, 저 통로를 지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뚱보아저씨도 그런 부류였고 맒이다. 그는 과거로 돌아온 미래의 자신이 다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비트는 꼬여버린 과거를 버리고 자신의 딸과 아내를 데리고 다시 미래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점점 미래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차고, 그 이웃들은 '미래로 되돌아가려는 과거 사람'을 막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GV에서 나온 질답을 읽어보면 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갈듯. 미래에서 온 그 자신들은 과거의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위해서 과거의 자신을 제손으로 죽여야하고 그것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야 하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말하고 싶은 영화의 교훈이고, 마지막 씬에서 다시만난 미래의 그 부부는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
'나비효과'라는 것을 배제하고서라도, 과거의 일을 되돌린다거나 바로잡는 일들은 무의미하다. 다른 것을 얻는 대신 어떤 것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은 "Nobody knows except what you know."
바른생활식 결론을 내리자면 "왠만함면, 착하게 살자. 하지만 실수했다면 그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감내하면서 살도록 하자."
그리고 하루가 끝난 나의 몇마디.
1_ <더 도어>를 볼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끝과 시작>때의 PIFF트레일러는 너무 화질이 조악했다. 며칠쓰고 버리는 거지만 PIFF의 얼굴아닌가요 관리좀.
2_ GV때 프로그래머분이 직접 통역에 나서주셨는데, 나중에는 안정적으로 잘하셨는데, 처음에는 영화를 보기는 하셨는지 의심날 정도로 버벅거리시더라, PIFF에서 예산을 조금 더 쓴다면 원할한 통역에 힘을 좀 써주셔야할 듯. 너무 많은 질문과 답변들이 통역하는 과정속에서 날아가버렸다. 내가 감독님의 답변을 직접 듣고 옮겨 쓴게 더 나을 형편.
3_ 가장 화나는 것인데, 부산국제영화제는 특히나, 관객들이 키워준 영화제이다. 그만큼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력적인 영화제인데, 그 '관객'이라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어선 안되겠다. 내 옆에 앉은 두 여자분이 문제였는데, GV시에 다른 사람들의 질문의 꼬투리를 붙잡고 그렇게 비웃어 대는 것이다. 특히, '사투리'하나 가지고 되게 비웃더라. 그 분들은 얼마나 영화에 조예가 있으셔서 영화를 깊게 이해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전혀 안 그래보였지만), 그런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행위가 자신을 높아보이게 해줄거라고 생각한다면 얼른 그 생각 고쳐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보기엔 자신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진 모르나, 남이 보면,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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