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13:00 파우스트
어제 꼴닥 밤을 새고 영화를 보러와서 너무 힘들었다.
영화에 집중을 하자니 잠이오고, 잠을 깨자니 영화에 집중이 안되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도 뭐 결국 무사히(?) 다 봤지만,
이 영화가 끝난 뒤 남포동 엔제리너스 커피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는 내자신을 발견,
왜 하필 창가에서 리뷰를 쓴답시고 앉아있었을까. 자 이제 영화얘기.
주인공 파우스트는 겁탈로 상처받은 어머니의 '슬픈 모유'로 그 공포가 전염되어, 항상 겁에 질려있다. 그녀는 겁을 먹을때마다 코피를 흘리곤 한다. 그리고 그 겁탈에 대한 공포가 그녀가 자신의 몸속에 감자를 키우게 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의 시체를 계속 곁에 두고 있는데, '어머니 시체'와 '감자'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공포와 혼란을 그대로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고향에 묻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 계기가 갑자기 나오긴 하지만, 뭐 어련히 그럴 수있으니 그냥 넘어가고. 그녀의 어머니를 고향에 묻겠다는 것은, 어머니가 겪은 과거의 아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여튼, 어머니를 고향에 모시고 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대저택의 식모로 들어가게 된다. 대저택에서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아주 긴 시간을 차지하는데, 여기에서 그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때문이다. 하지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예리하게 잡는 것도 아니었고, 아슬아슬한 인물간의 줄타기 이런것도 없어서 이때 사실 잠과의 싸움이 격렬했다.-_-
파우스트의 어머니가 항상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줬듯, 그녀는 공포를 이기는 수단으로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운 대저택에서 그녀가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노래뿐. 저택의 주인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녀에게 노래를 부를때마다 진주를 한알씩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지만 점점 노래를 부르는 일에 익숙해지고, 대저택의 피아노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가진다. 피아노는 그녀가 공포와 혼란에 얽매인 자신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갖게 되는 계기를 주는 듯하다. 그리고 정원사 아저씨는 그녀가 세상에 대한 공포를 극복 할 수 있게 충분히 쇽 업소버-_-가 되어준다.
결국 그녀는 대저택에서 일한 댓가를 하나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지만, 그곳은 그녀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갖고 지내던 공포심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아닌, 타자에 의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공포를 극복하도록 격려받는 공간이다. 하여간, 그녀는 주인에게 배반당한 이후에 큰 변화를 겪게된다. (아마도.) 대저택을 찾아가서 진주를 훔쳐오고 나오는 길에, 또 찾아온 감자통(...)때문에 쓰러진다. 겁탈을 당했는지 안당했는지 애매한 채로(결국 안 당한듯하지만) 정원사에게 발견된다. 그녀는 정원사에게 자기 몸속의 감자를 빼달라고 애원한다.
그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어머니를 바다로 돌려보낸다. 인어가 바다에 돌아갔을때 다시 인어의 노래는 인정받았다는 그녀의 노랫말 가사처럼 그녀는 어머니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노래, 피아노로 대유되었던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한다. (마지막부분에서 트럭에 훼이크치고 계신 어머님 시체에서 빵터져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그녀는 마지막씬에서 감자를 제거한 자신으로써 어머니를 위로하고 화해한다.
17:00 페어 러브
그저 식상한 종교/국경/나이를 초월한 사랑이야기. 이런건 아니었다. (다행)
(어떻게 보면 욕먹기 십상인)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미묘한 감정들을 적절한 클로즈업과 차분한 시선으로 잘 비추어 아름답게 보여준 멜로계의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정말이지 통속적이기 딱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사랑쟁취를 위한 주인공들의 세계와의 다툼-_-과 같은 어줍잖은 소재에 빠지지 않는다. 이 둘의 미묘한 사랑의 시작과 진행과 끝, 그리고 시작을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면모도 잘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류에 걸맞게 이 영화는 연애가 서툰 남자와 세상 모든게 신기하고 재밌는 귀여운 여자의 연애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허나, 이 영화가 다른 그저그런 영화들과 달랐다. 그건 사랑이라는 한순간의 바람과 같은 감정에 삶의 모든 걸 걸기엔 너무 나이가 많아버린, 욕망이라는 것이 더 이상 젊음이라는 변명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아저씨'와 가진 모든 걸 잃고 사랑이 절실한 '아씨'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는지를 감독은 과장되지도 않고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허한 웃음만 있는 것도 아닌 좋은 영화였다.
20:00 슬립리스
유투브에 올라온 이 동영상이 이 영화의 많은 특징을 잘 보여주는듯하다.
무턱대고 재생버튼 누르고 절 원망하진 마시라.
난 잘 몰랐는데, '다리오 아르젠토'라는 감독은 상당히 스릴러계에서 저명한 인사이다. PIFF에서 접하게 된 것도 일반 프로그램이 아닌 감독 특별전이다. 그의 많은 영화중에서 그의 부활(?)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슬립리스를 택했다. 상영직전에 한 외국인이 '올레!!'를 외치며 그의 대단한 팬임을 자처하기도...
일단 한줄요약부터 하자면 그야 말로 놀라운 영화였다. 대단해 브라보.
앞으로 어줍잖은 헐리웃 영화를 보고 '스릴러'영화를 봤다고 말하진 않을듯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이 '기차 시퀀스'는 개봉당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감독은 초반부터 공포감과 그것이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긴박함을 엄청난 속도와 포스로 화면에 쏟아낸다. 뒷덜미가 아주 시원할 정도로 긴박함과 그 공포스러움이 예술이다.
스토리는 단순한 편인데, 한 매춘부가 오래전 난쟁이 살인마 사건의 살인마를 손님으로 만났다가 우연히 증거물을 손에 넣게 되고, 그녀의 연락을 받은 친구를 비롯한 수명의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그리고 그를 추적하는 사람들을 지워내려는 이야기이다.
일반 스릴러치고는 다소 고어스럽고 B급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각각의 살인 시퀀스의 생생한 묘사와, 공포감의 전달이 정말 수준급이다. 특히, 사운드.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소리들은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B급 티를 확확 내는 배경음악이지만, 긴장감을 전달하는데는 최고였다. 그리고 살인할 때의 살점을 찧어대는 그 소리는 그저.... 하지만, 스토리는 다소 B급 수준인듯하다. 치밀하게 짜이는 요즘의 스릴러와는 달리 스토리는 단순하고, 살인 시퀀스 자체는 긴박감이 넘치고 아주 강렬하지만, 중간의 스토리 진행을 위한 장면들은너무 평범해서, '영화 보는 내내 가슴 졸이는 맛'은 확 떨어진다. 스토리상의 아쉬운점은 있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간중간의 장면들이 김을 새게 만들긴 하지만 워낙 치밀하게 짜여진 살인시퀀스들이 그것을 충분히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스릴러 영화계의 개성있는 명품인듯 하다. 앞으로 팬이될듯. 아,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작품은 딸 아시아 아르젠토가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무서운 부녀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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